빅애스크 이야기

htm_2013122723563610101012
지난 19일 산업계가 정부와 국회에 온실가스 감축목표 재조정과 배출권거래제 시행 연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가 기후변화 대응 관련 입법 저지와 온실가스 감축정책 무력화에 총력전을 펴왔다는 점에 비춰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법률이 정하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정책의 기본 뼈대까지 허물자는 것은 상식에 어긋날뿐더러 장기적으로는 국가경제에도 큰 부담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수정하게 되면 국가가 욕을 먹더라도 기업들의 부담은 당장 줄어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국가 간 협상은 2015년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가이드라인은 이미 나와 있다.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과 견줘 2도 이상 상승하는 것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인당 배출량, 역사적 책임, 지불 능력 등 어떤 기준을 들이대더라도 과감한 감축을 요구받게 돼 있다. 이런 조건에서 국제사회의 신뢰까지 잃게 되면 숙제를 하지 않은 책임은 나중에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

 산업계는 감축목표 수정의 근거로 2010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예측치를 초과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2009년까지 연평균 1.5% 증가에 그치던 배출량이 2010년 들어 전년 대비 9.8%나 폭증한 것은 철강산업의 호황에 따른 대대적인 설비 증설에 기인한다. 불과 3년 후인 지금은 어떤가. 정반대의 상황이다. 현재 세계 철강업계의 과잉설비는 5억t가량으로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과잉공급 구조는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감축목표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과거의 비정상적인 배출량 증가가 되풀이될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전 세계 배출량의 약 1.4%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감축목표가 국제사회가 목표로 삼고 있는 감축량에 비해 과도하다는 것도 착시효과를 노린 주장이다. 한 국가의 감축 책임은 단순히 세계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가마다 인구와 경제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1인당 배출량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3.0t으로 독일(9.7t)과 일본(10.4t) 등 경제대국들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문제는 최근 몇 년간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속도가 GDP 성장률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우리나라는 고비용·비효율 경제를 대표하는 ‘갈색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등 다른 국가들의 움직임은 우리보다 훨씬 기민하다. 미 오바마 정부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 없는 행정명령으로 화력발전소에 대한 탄소배출량 규제에 나서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보다 훨씬 강력한 방식이다. 중국은 올 6월 선전시를 시작으로 11월 말에는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배출권 거래제를 개시했다. 내년이면 중국은 EU에 이어 세계 2위의 탄소 거래시장으로 부상하게 된다.

 최근 바르샤바 기후변화 총회에서는 2020년 이후 감축목표를 2015년까지 제출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시간표가 짜였다. 경주 시작을 알리는 방아쇠가 당겨진 셈이다. 이런 마당에 우리는 늦게 출발하자는 산업계의 태도가 과연 현명한 것일까. 정부와 독자들의 냉철한 판단을 기대한다.

안병옥 기후변화 행동연구소장

Add Comment Register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의 HTML 태그와 속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a href="" title=""> <abbr title=""> <acronym title=""> <b> <blockquote cite=""> <cite> <code> <del datetime=""> <em> <i> <q cite=""> <strike> <st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