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소식

예상했던 대로 그들이 바르샤바로 가져온 가방 속에는 이렇다 할 카드는 들어있지 않았다. 막판에 36시간 논스톱으로 공식 일정을 하루 넘겨 진행된 제19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19)는 안도감과 실망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막을 내렸다. 퇴장과 철수, 상호 비난 등으로 얼룩진 회의였지만 190여 개국 대표단들이 결정문에 도장은 찍었으니 파국은 피한 셈이다. 더구나 이번 회의는 처음부터 ‘협상의 완전한 타결’이 아닌 ‘협상 타결을 위한 로드맵 마련’이라는 징검다리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2015년 말 파리(COP21)에서 새로운 기후체제에 합의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많은 의제 중에서도 이번 회의를 통해 해소되길 기대했던 주요 쟁점은 아래의 세 가지였다.

1. 202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강화 방안 및 그 이후 시작되는 새로운 기후체제에서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책임 분담방식 도출
2.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재정적으로 돕기 위해 2020년까지 선진국들이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1000억 달러 조성의 구체적인 로드맵 마련
3.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극한기후현상 및 해수면 상승 등의 피해 구제를 위한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대응체계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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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가는 길(Road to Paris) 더 불투명해졌다

첫 번째 온실가스 감축책임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생각이 같은 개도국(like-minded developing countries)’진영과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주축으로 하는 선진국 진영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재연됐다. 전자에 포함된 국가는 산유국인 베네수엘라, 사우디아라비아, 볼리비아, 말레이시아, 석탄 의존도가 높은 중국과 인도, 그리고 이들과 이해관계가 밀접한 쿠바, 니카라과, 에콰도르, 태국 등이다. 이들은 1992년 기후변화협약과 1997년 교토의정서의 기본 원칙인 선진국과 개도국의 명확한 구분이 향후 협상에서도 유지되어야 한다며 선진국들이 ‘역사적인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온실가스 감축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의 구분은 2011년 합의한 더반 플랫폼(Durban Platform)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이며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행위라며 맞섰다. 이들은 선진국들의 ‘역사적인 책임’도 ‘흘러간 노래’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새로운 기후체제가 출범할 2020년 즈음에는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개도국들의 누적배출량이 선진국들의 누적배출량을 초과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 근거다.

결국 결정문에는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공약’(commitment)한다는 표현 대신 구속력이 약한 ‘기여(contribution)’한다는 애매한 단어가 포함됐다. 이와 같은 진통은 2011년 합의했던 더반 플랫폼에서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당시 유럽연합은 새 기후체제의 법적 구속력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 ‘법적 체제(legal instrument)를 가진 의정서’라는 구절을 넣으려 했지만 ‘법적 결과물(legal outcome)로서의 의정서’를 고집하는 인도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야 했다. 결국 ‘법적 효력을 가진 합의 결과물(agreed outcome with legal force)’이라는 타협적인 표현으로 갈등이 봉합되었지만, 이 표현이 어느 정도의 구속력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상태다(참고: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더반 기후변화 총회 무엇을 남겼나?). 이번 바르샤바에서‘공약’이 ‘기여’라는 표현으로 대체된 것은 ‘구속력 있는 공약(binding commitment)을 ‘약속과 평가(Pledge & Review)’로 대체했던 칸쿤 제16차 당사국총회(COP16)의 후퇴를 연상케 한다.

또 다른 문제는 각국의 감축목표 제시와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검증 및 평가라는 2단계 상향식 감축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이번 바르샤바에서는 모든 국가들이 2020년 이후의 감축목표 준비를 개시해 2015년 말 파리에서 개최되는 제21차 당사국총회 이전까지 제출(준비가 되어 있는 국가들의 경우 2015년 1/4분기까지 제출)한다는 데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의지가 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국이 제시한 감축목표가 형평성 및 2℃ 상승 억제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것인지 평가하고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된다. 따라서 최소한 2014년 말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제20차 당사국총회 전까지는 감축목표가 제시되어야 시간표에 맞출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 협상전문가들의 견해다. 지금으로서는 2014년 9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초청하는 기후정상회의에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새로운 기후체제에 대한 완전한 합의는 2016년 또는 그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개도국 재정지원, 아직은 신기루에 불과해

우리나라가 사무국을 유치한 녹색기후기금(GCF)도 여전히 신기루에 가깝다. 2020년까지 1000억 달러를 조성해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선진국이 내놓은 재원은 사무국 운영비용인 690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번 회의에서도 결정문은 “선진국들은 가난하고 취약한 국가들의 기후 원조를 위해 2020년까지 공적 기금을 <상향된 수준(increasing levels)>에서 제공한다”는 추상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다. 녹색기후기금(GCF)의 초기 재원조달도 ‘매우 유의할만한 스케일(a very significant scale)’로 한다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재원 조성을 촉진하기 위해 2년마다 장관급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지만, 누가 얼마나 내놓을 것인지 구체적인 결정은 기약 없이 미뤄진 상태다.

‘새롭고 추가적인 재원’에 대한 해석과 재원조달방식도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다. 이번 회의에서도 ‘공적 기금’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개도국들의 주장과, ‘민간 기금’을 포함하지 않을 경우 제공이 불가능한 액수라는 선진국들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개도국들이 ‘민간 기금’을 재정 지원의 범주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어떤 종류의 기금까지 인정할 것인지는 향후 과제로 남겨졌다. 지금까지 논의로 보면 정부가 ‘공적 기금’을 제공하는 사업에 추가되는 ‘민간 기금’만을 포함시키는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타협안이 간신히 건져 올린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작년 말 ‘도하 기후 게이트웨이’ 결정문에 원론적인 수준에서 언급되었던 ‘손실과 피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또한 협상의 막판까지 뜨거운 쟁점이었다. 회의 초반에는 최근 필리핀에서 발생한 슈퍼태풍 하이옌 탓에 합의가 비교적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점치는 분위기가 우세했지만, 회의 막바지로 갈수록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손실과 피해’에 대한 대응체계를 선진국들의 책임에 대한 ‘보상(compensation)’으로 규정하고 기존 적응체제와는 별도의 기구 설립을 요구하는 개도국들과 이를 거부한 선진국들은 막판까지 결정문 초안에 포함된 ‘아래(under)’라는 단어를 놓고 격렬하게 대립했다.

여기에서 ‘아래’는 ‘손실과 피해’ 대응을 기후변화 적응 프레임워크 아래에서 추진한다는 것을 뜻한다. 개도국들은 ‘손실과 피해’는 해수면 상승에 따른 국가 존립기반 위협 등 기후변화 적응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피해에 대한 보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별도의 기구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선진국들은 ‘손실과 피해’가 기후변화 적응과 분리될 경우 개도국들이 새로운 재정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타협은 ‘손실과 피해에 관한 바르샤바 국제 메커니즘(Warsaw international mechanism for loss and damage)’을 구축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기후변화 적응체제 하에서 시작하되, 3년마다 이 메커니즘의 구조, 임무, 효과성을 평가한다는 전제를 달고서다. 하지만 재원조달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결정도 이루어지지 않아 개도국들의 불만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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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물음표 남긴 최악의 당사국총회

이번 총회에서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산림 분야에서는 2억8천만 달러 규모의 재정지원 확정과 함께 평가방법론, 운영조직 설립, 재정지원 방안 등을 포함하는 ‘바르샤바 REDD+ 패키지(Warsaw REDD+ package)’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REDD+는 개도국의 산림전용과 황폐화 방지 및 지속가능한 산림경영 지원체계를 뜻한다. 2005년부터 시작된 REDD+ 협상이 일단락됨으로서 새로운 기후체제에서는 개도국의 산림관리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활동이 활발하게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REDD+에 대해서는 “산림마저 상품화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지난 10년간 유럽대륙에 버금가는 면적의 산림이 사라진 현실 속에서 최선의 대안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외에도 유엔의 ‘적응 기금(Adaptation Fund)’에 1억 달러 규모의 재원을 조성하고, 2014년부터 개도국이 제출하는 온실가스 배출에 관한 격년보고서의 검증을 확정한 것도 바르샤바 총회가 남긴 성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번 바르샤바 총회는 기후변화협상의 역사에서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더반 플랫폼에 대한 합의 이후 2년이 흘렀지만 2015년까지 협상을 타결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의지와 준비는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비난은 특히 감축공약 하향조정(1990년 배출량 대비 25% 감축에서 2005년 배출량 대비 3.8% 감축=1990년 대비 3% 증가로 수정) 방침을 밝힌 일본과 탄소세 및 배출권거래제 도입 철회 선언을 한 호주에 집중됐다. 총회 개최국인 폴란드의 태도도 많은 이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당사국총회의 스폰서로 석탄, 석유, 철강, 자동차 기업들을 불러들이고 총회 기간 세계석탄협회 총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총회 의장인 마르친 코롤레츠 환경부장관을 해임하는 등 총회 참가자들을 조롱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과 협상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바르샤바 당사국총회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패했다. 지난 9월 27일 발표된 IPCC 제5차 보고서는 지구 평균 기온상승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2℃ 이내에서 억제하려면 이산화탄소 누적배출량이 1조 톤을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과 같은 배출 추세를 유지할 경우 이 수치는 2040년 11월 25일에 도달하게 된다(관련 기사 참조: 남아 있는 지구탄소예산 약 4천억 톤 어떻게 배분하나?). 해야 할 숙제를 뒤로 미룰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주 화요일 바르샤바 총회장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연과 협상할 수 없다(We cannot negotiate with nature).” 우리가 해야 할 일은? 2035년까지 에너지 수요를 엄청나게 부풀린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부터 바로잡는 일이 아닌가 한다(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안병옥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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