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애스크 이야기

이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김선우

 

믿기지 않았다. 사고 소식이 들려온 그 아침만 해도

구조될 줄 알았다. 어디 먼 망망한 대양도 아니고

여기는 코앞의 우리 바다.

어리고 푸른 봄들이 눈앞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동안

생명을 보듬을 진심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

사방에서 자동인형처럼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 시키는 대로 해라, 지시를 기다려라.

 

가만히 기다린 봄이 얼어붙은 시신으로 올라오고 있다.

욕되고 부끄럽다. 이 참담한 땅의 어른이라는 것이.

만족을 모르는 자본과 가식에 찌든 권력,

가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무능과 오만이 참혹하다.

미안하다, 반성 없이 미쳐가는 얼음나라,

너희가 못 쉬는 숨을 여기서 쉰다.

너희가 못 먹는 밥을 여기서 먹는다.

 

환멸과 분노 사이에서 울음이 터지다가

길 잃은 울음을 그러모아 다시 생각한다.

기억하겠다, 너희가 못 피운 꽃을.

잊지 않겠다, 이 욕됨과 슬픔을.

환멸에 기울어 무능한 땅을 냉담하기엔

이 땅에서 살아남은 어른들의 죄가 너무 크다.

너희에게 갚아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마지막까지 너희는 이 땅의 어른들을 향해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차갑게 식은 봄을 안고 잿더미가 된 가슴으로 운다.

잠들지 마라, 부디 친구들과 손잡고 있어라.

돌아올 때가지 너희의 이름을 부르겠다.

살아 있어라, 제발 살아 있어라.

 

4월19일 저녁 제주대 아라뮤즈홀에서 진행된 빅 애스크 기후변화 콘서트 현장. 공연 말미에 시인 김선우님께서 같은 날 한겨레 신문에 특별기고된 시를 낭송해 주셨습니다. 흐느낌 속 김선우님의 낭송에 300여명의 객석은 천천히 눈물로 번져갔습니다. 이윽고 가수 홍순관님의 노래 <쿰바야>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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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um Ba Yah
오, 주여 우는 자에게 오소서.
평화를 위해 오소서.
여기에. 이 땅에.

마지막 곡 <쿰바야>는 세월호로 상처 입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물을 가만히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제주 콘서트는 실종자의 생환을 기원하며 <쿰바야>와 함께 조용히 막을 내렸습니다.

4월16일 오전 진도 앞바다에서 청해진해운이 운영하는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화물 과적, 평형수 부족 등 안전 기준을 지키지 않은 채 운영되어 오던 세월호는 전날밤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세월호가 물살이 빠른 맹골수도에서 급격히 기울어 침몰 위기에 처하자 선장을 비롯한 주요 선원들은 선실에 있던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남긴 채 제일 먼저 탈출했습니다. 안내방송만 믿고 선내에서 대기하던 승객들 대부분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고 있었던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초기 탈출자 172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후 실종자가 되어 시신으로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세월호 침몰로 인한 사망, 실종자는 무려 304명이며 사건 발생 26일이 지난 지금도 29명이 실종 상태입니다.

제주 콘서트는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세월호와 함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콘서트를 사흘 앞두고 일어난 대참사의 참혹함과 슬픔을 비껴갈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최측인 빅 애스크 네트워크는 콘서트 당일 아침까지 기후변화 콘서트 개최 여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기후변화에 대해 경계하고 준비하자’는 내용이 이번 세월호 참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노래를 줄인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탐욕이 극에 달한 청해진해운과 부실한 초동대처로 재난관리에 철저하게 무능함을 드러낸 정부, 그리고 각종 유착과 부패 의혹 등으로 인해 세월호 사고는 인재인 동시에 관재였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문제는 예고된 재난이라는 점에서 세월호 참사와 닮았습니다. 기후변화는 얼핏 자연적 요인 때문인듯 보여도 과학은 기후변화가 근현대 화석연료에 의존해 온 인간의 산업적 행태에 따른 인위적 결과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기후변화는 이번 세월호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온실가스를 전면적으로 감축하고 과학자들이 벌써부터 예고해 온 기후변화의 재앙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월호와 같은 아픔을 계속 반복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아이들을 또 한 번 사지로 내몰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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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실종자의 무사생환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설치된 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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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맡아주신 가수 홍순관님과 시인 김선우님. 두 분은 말과 글로써 세월호의 아픔을 담아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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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 한 톨의 무게는 농부의 무게! 농사를 지으면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알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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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홍순관, 윤영배, 김선우, 안병옥님.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안병옥 소장님은 왜 세월호 구조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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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세계>를 노래하고 계신 가수 윤영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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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방 있음>을 낭송하시는 시인 김선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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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콘서트 무대에 처음 서게 된 가수 장필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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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순님은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와 <You’ve got a Friend>를 들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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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손님으로 초대 받으신 제주대 철학과 윤용택 교수님.

교수님은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기후변화에 시급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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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모어찬스도 세월호 사고 희생자를 애도하며 <자유인>을 들려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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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작은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이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참가자분들.

기후변화법이 시스템 전환을 위한 발디딤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크기변환_021 세월호의 아픔과 함께 했던 제주 콘서트에서는 국회 기후변화 콘서트가 제안되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제주도의 푸른 밤이었습니다.

 

 

(빅 애스크 네트워크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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