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소식

지난해 11월 3일 한 통의 서한이 세계의 주요 언론에 공개됐다. 서한에 서명한 사람들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 출신인 제임스 한센 박사, 카네기 연구소의 켄 칼데이라 박사, MIT대학의 케리 이매뉴얼 교수, 호주 아들레이드 대학 톰 위글리 교수 등 네 명이다. 이들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핵 에너지’(원자력 발전)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로부터 두 달쯤 지난 후 일본 학자들이 반론 성격의 서한을 발표했다. 작성자는 토호쿠 대학의 주센 아수카 교수, 관세이 가쿠인 대학의 박승준 교수, 전 UN 기후변화 대사 마쭈요시 니시무라, 교토대학 토루 모로토미 교수 등 일본에서는 기후변화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 인물들이다. 얼마 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친분이 두터운 주센 아수카 교수가 이 서한을 보내왔다. 전문을 번역해 두 차례로 나누어 싣는다(빅애스크 네트워크 사무국).

“핵에너지는 기후변화 문제의 해답이 아니다”(제2부)

제1부 보기  

1. 원전 사고의 가능성

2. 사망자수의 비교

3. 원자력 발전의 비용

 

제2부

4. 일본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었다

이제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 사고 당시 재난대응요원들은 발전소 부지에 있는 내진 건물에 있었습니다. 이 건물은 발전소 내에서 지진에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만일 이 건물이 없었더라면, 원자로의 모든 통제기능과 통신기능이 파괴돼 원자로는 완전히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내진 건물은 2007년 지진이 또 다른 원전 단지인 니카타현을 강타한 후 지어졌습니다.  내진 건물은 2010년 1월 니카타현 원전에, 2010년 7월 이후에는 후쿠시마 제1, 제2 원전에 건설되었습니다(TEPCO 2010). 만일 메가톤급 대지진이 2011년 3월 11일보다 9개월만 일찍 발생했더라면 후쿠시마 제1 원전에는 내진 건물이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원자로를 통제할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재난대응요원들도 즉시 대피해야 했을 것입니다. 만일 지진이 평일 오후가 아니라 원전 부지에 인력이 거의 없는 휴일이나 밤중에 일어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시 원자로 통제는 극도의 어려움에 직면했을 것입니다.

당시 원자력위원회 위원장 순수케 곤도(Shunsuke Kondo)가 갖고 있던 2011년 3월 25일자 문서에 따르면, 내진건물이 뒤늦게 들어섰더라면 더 큰 규모의 수소폭발이 일어났을 것이고 제1 원전으로부터 상당한 양의 방사능물질이 방출되어 모든 인력들이 대피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2, 제3 원전뿐만 아니라 제4 원전의 연료저장수조로부터 훨씬 많은 양의 방사능 물질이 대기로 방출되어 250km 반경 내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대피가 불가피했을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도 도쿄 지역의 3천만 명이 대피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문서들은 사고 당시 일본 정부 내에서 극소수의 사람들만 볼 수 있었고 사고 발생 훨씬 후인 2011년 가을에야 대중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만약 지진이 수개월 일찍 또는 몇 시간 후나 몇 시간 앞서 발생했다면 녹아내린 핵 연료봉 냉각이 불가능했을 것이고 도쿄를 포함해 수천만 명이 대피를 해야 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일본 동부의 절반이 폐허로 변할 수도 있는 초대형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불행중 다행’으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테러 공격의 가능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냉각시스템의 파괴가 얼마나 쉽게 원자로의 멜트다운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사고는 재래식 무기로 전력망을 공격해 정전을 유발하는 것만으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현재 폭발물을 이용한 테러 공격의 목표가 될 수 있는 수백 개의 송전탑들이 존재합니다. 만약 이 송전탑들 가운데 몇 개가 폭발물에 의해 파괴된다면 후쿠시마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습니다.

5. 석탄화력발전소와 한 묶음으로 건설되는 원전

석탄화력발전소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 원자력 발전을 용인한다는 논리는 정치적인 관점에서는 지나치게 순진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사실 원자력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는 일본에서 동시에 도입되고 건설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석탄화력발전소는 원자력발전소의 가동률이 줄어들 경우 이를 메꾸는 백업 시스템으로서 한 묶음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원자력발전을 장려하면서 석탄화력발전소의 수를 꾸준하게 늘려왔으며,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낳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원자력발전을 장려하는 이해당사자들(경제 관료들, 전력회사들, 주요 중장비건설업체들 및 에너지 다소비 산업들)이 석탄화력발전소를 장려하는 사람들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에 얽혀있기 때문에 중앙집권화된 거대 전력생산시스템을 구축하고 자신들의 고정 자산과 전력 판매를 극대화하려는 강력한 경제적 동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에너지 수요관리와 재생에너지 확대에는 큰 흥미가 없습니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유포해왔습니다. 많은 일본인들이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였음은 물론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석탄화력발전소의 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탈핵을 통해 산업구조와 이해관계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과 조건들이 일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비슷한 산업구조와 경제발전 단계에 있는 어떤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6. 신형 원자로들의 역할

여러분들은 아마 안전성이 강화된 신형 원자로들은 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강화된 안전 기준과 ‘패시브 안전 시스템’을 갖춘 제3세대 원자로들의 수는 2013년 1월 현재 세계에서 건설 중인 76개의 원자로들 가운데 2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일본원자력산업포럼, 2013). 대다수 원자로들은 여전히 2세대 기술로 설계된 것들입니다(Garthwaite, 2011). 현재 가동 중인 원자로들에 적용된 기술은 30~40년 전에 개발된 기초기술들입니다. 또한 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제4세대 원자로의 상용화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안전성이 강화된 신형 원자로 건설을 권고한다면, 우리는 여러분들이 더 위험한 기존 원자로의 폐쇄를 주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동시에 일본을 포함한 국가들이 추진하고 있는 재래식 원자로 기술의 개발도상국 수출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더욱이 민간 보험회사들이 손해보험을 계속 거부하면서 원자로 건설업체들은 책임을 면제받고 원전 운영 주체들의 책임 또한 제한적으로만 묻는 현재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더 안전한 신형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을 주장하는 근거 역시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보다 안전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장려하고자 한다면 기존 시스템의 개혁부터 주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원자로가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핵폐기물의 문제는 피할 수 없습니다. 핵폐기물의 관리 책임을 미래 세대에게 미루는 것은 기후변화 대응의 부담을 미래세대에게 떠넘기는 것과 유사한 윤리적 문제에 봉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다 안전한 원자력발전 시스템을 갖추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지구평균기온 2℃ 상승 억제라는 기후변화 대응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을 온실가스 감축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7. 원전 없이도 2℃ 상승 억제 목표 달성 가능한가?

2℃ 상승 억제라는 야심찬 기후변화 대응 목표를 원자력에 의존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지 검토한 연구들은 많습니다. Edenhofer et al.(2010)는 5개의 서로 다른 저탄소 시나리오 비교를 통해, 2000년에 원자력에 대한 투자를 중단할 경우 2100년에 지불해야할 추가비용은 GDP의 0.7%에 불과하다는 분석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최근 다른 연구자들도 후쿠시마 사고 후 탈핵을 고려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예컨대 Bauer et al. (2012)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대비 2℃ 상승 억제라는 목표는 원자력 없이도 2020년까지 GDP의 0.1%, 2050년까지 GDP의 0.2% 이하의 추가비용으로 달성될 수 있습니다. Duscha et al.(2013)은 탈핵은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까지 증가시킬 것이지만, 선진국들은 GDP의 0.1%에 해당하는 추가비용만으로 2℃ 상승 억제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자신들이 져야할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또한 Duscha et al.(2013)은 선행 연구들을 검토한 결과 원자력 발전을 배제한 온실가스 감축에 드는 추가비용은 전 세계적으로 GDP의 1%가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더구나 이 연구들은 기후변화 대책 추진으로 줄일 수 있는 피해비용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비용까지 포함해 분석한다면 원자력 없는 기후변화 대응의 경제적 부담은 더욱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계산들이 에너지 경제 모델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적용한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비용과 LNG 가격 하락 속도가 과거 예측에 비해 훨씬 빠른 것으로 나타나는 등 앞의 분석 결과를 뒷받침해주는 사실들은 많습니다. 또한 발전차액지원제도와 같은 정책수단이 어떻게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속화할 수 있는지 입증하고 있는 나라들도 많습니다.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믹스를 막론하고 탈핵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경제적 비용과 시기, 그리고 시민들의 비용 지불의사입니다. 앞에서 논의한 것처럼 원자력 추진세력이 구축한 기득권 장벽을 제거할 수 있다면, 원자력이나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고도 2℃ 상승 억제의 목표 달성은 기술적, 경제적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게다가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절약은 최선의 대안으로서, 기후변화 대응수단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 창출, 에너지 안보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합니다. 만일 우리가 원자력발전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플루토늄 증식과 핵무기로의 전환과 관련된 위험 또한 감소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방사능 폐기물 관리비용을 대폭 낮추고 미래 세대가 져야할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8. 결론: 대안은 ‘러시안 룰렛’에 의존하지 않는 에너지정책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그 엄정함과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얼핏 보기에 원자력발전은 효과적인 기후변화 대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분석해보면 경제적으로 보나 윤리적 기준의 관점에서 보나 원자력은 기후변화 대책은 물론 에너지원으로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원자력발전의 장려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는 것 외에도 많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편지의 서두에서 일본의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이 중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 일본 반핵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은 필요하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에 대항해 시위를 벌였으며, 기후변화가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견해에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 왔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경험에서 일본은 여러 면에서 통제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은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된 국가에 속합니다. 일본은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한 지난 4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반면 오늘날 원자력발전소를 신규 건설하려는 나라들은 경제적으로도 취약하고 민주적이지 않은 정치체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국가들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위험과 비용을 고려해보면 국제사회가 기후변화 대응방안으로서 원자력발전을 허용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 들고 두렵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국제사회가 일본이 경험했던 핵 재난의 엄혹함을 깨닫고 원자력발전이라는 ‘러시아 룰렛’에 의존하지 않는 기후변화 대책과 에너지믹스에 대한 입장을 갖게 되길 진심으로 희망합니다(번역 허광진).

편지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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